‘공동’ 주택에서 ‘함께’ 산다는 것
2022.10.26
©Lluc Miralles
서울시는 지난해 10월부터 모든 재개발, 재건축 단지에 ‘임대주택 소셜믹스 의무화’를 시행했다. 말 그대로 재개발 및 재건축 시, 물량의 일부를 반드시 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것. 이전에도 용적률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재개발 단지에 임대주택을 포함한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기존 관행과 달리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동 같은 라인에 혼합 배치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양적 공급’에 치우쳤던 지금까지의 공공주택 정책 패러다임을 ‘복지 우선주의’로 전환하여 공공주택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퇴출하고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동시에 품질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그 반응이 심상치 않다. 분양주택과 임대주택 거주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은 늘 존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셜믹스 의무화’의 시행을 계기로 그 선이 더 복잡하게 꼬여버린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대주택 거주자들의 경제력과 그것이 불러온 차별이 임대주택과 관련된 가장 큰 이슈였으나, 이제는 많아진 임대주택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덩달아 높아진 분양가와 애매한 제약들로 인해 임대주택에 입주 지원조차 불가능한 형평성의 문제가 불거지며 역차별 논란으로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경제력이 다른 이들이 함께 사는 건 정말 불가능할까? ‘소셜믹스’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접근이 필요할까? 민과 관이 각각 주체가 된 두 사례를 통해 그 가능성을 살펴보자.
정책으로 구현해낸 소셜믹스
Dortheavej Residence, Copenhagen, 2018 / BIG
©Rasmus Hjortshøj
‘도르테아베즈 아파트'는 오래된 공장과 창고 등이 즐비한, 덴마크 코펜하겐 북서부 산업지구에 들어선 5층 규모의 공동주택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BIG가 설계한 건물이다. 경제성을 고려해 모듈 구조를 도입하되, 각 모듈을 층마다 어긋나게 쌓아 건물 전면부와 후면부의 시각적 소통을 유도했다. 또, 저층부는 입주자가 아닌 이들도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는 길로 이용되게끔 완전히 개방했다. 덕분에 건물의 규모가 상당함에도 도시의 흐름을 끊는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각 단위 유닛 내에서의 주거 환경도 쾌적하다. 집마다 딸린 작은 테라스, 대형 창에서 비춰드는 풍성한 자연광, 인근 녹지로 시원하게 열린 시야 등 다양한 건축적 해법을 동원하여 거주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아파트는 세계적 건축가가 지은 저렴한 공공주택, 지속 가능하고 안전하며 합리적인 공공주택의 새 모델로 높이 평가받아 ’덴마크 건축가 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덴마크의 견고한 사회주택 정책이 있다. ‘도르테아베즈 아파트’의 다른 이름은 ‘모두를 위한 집'인데, 이 이름이 곧 덴마크 사회주택 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국가가 사회주택 입주 자격으로 소득 기준을 제시함과 달리, 덴마크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입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덴마크 전체 인구의 60%는 사회주택에 거주해 본 경험이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 차별도 없다.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합리적인 임대료로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 그야말로 사회주택의 기본 목적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거주자의 참여로 만들어낸 공공주택
La Borda Cooperative Housing, 2018 / Local Arquitectura Cooperativa
©Lacol
‘라 보르다 공공주택’은 바르셀로나 외곽, 산업용 부지에 들어선 공공지원 주택이다. 40, 60, 75㎡ 세 타입으로 구성된 28세대와 주방, 식당, 세탁시설, 손님용 공간, 창고, 테라스나 옥상 등의 외부공간 등 이웃과 공유하는 공공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직사각형 평면의 중심부에는 널찍한 중정이 조성되어 있는데, 입주민들의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모든 공공공간은 중정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도르테아베즈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이 건물 역시 최소한의 비용으로 편안한 주거 환경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가벼우면서도 품질이 좋은 집성목을 주재료로 사용해 자재비와 에너지 소비율을 대폭 낮췄고, 덕분에 지속 가능성까지 고려한 친환경적인 건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라 보르다 공공주택‘은 건물의 퀄리티 뿐 아니라, 건물이 지어지기까지의 과정 또한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제대로 된 품질의 주택을 합리적 가격으로 공급하기 위해 지역 공동체가 자체적으로 발족한 주택 조합이 추진한 프로젝트인데, 설계부터 시공, 입주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입주자들의 초기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사를 두 단계로 나눠 진행하는 등의 방법도 동원됐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갖춘 건물을 짓는 것이 1단계라면, 거주자들이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며 덧붙이고 쓸모를 더해감으로써 완성되는 식이다.
최근 한국식 아파트가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서민용 주거 공급을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지난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더 나은 주거 환경을 목표로 개선을 거듭한 결과 세계적으로도 그 합리성과 효율성을 인정받는 일종의 모범 답안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공동’ 주택의 시각으로 돌아가, 이제는 단위 세대의 진화를 넘어선 공유 공간의 진화, 커뮤니티의 진화를 고민할 때다.
소셜믹스를 가능케 할 세심한 건축 계획, 다양한 계층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 무엇보다도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라는 인식 개선을 바탕으로 함께 모여 사는 가운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예기치 않는 방법들을 찾아봐야겠다.
전효진 | 건축저널 『C3KOREA』 편집차장
> 참고문헌
https://www.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11462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648771&memberNo=45490325
> 사진 출처
https://www.archdaily.com/903495/homes-for-all-dortheavej-residence-bjarke-ingels-group
https://www.archdaily.com/922184/la-borda-lacol?ad_medium=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