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화를 만드는 N분 도시(동네)
2022.09.25코로나19가 일상화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도시환경 조성이 매우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의 상황 변화에 대비·적응하여 새로운 일상(뉴노멀, New Normal)을 받아들이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는 다양한 계획을 추진해왔고 2020년 1월, 파리시장 안 이달고(Anne Hidalgo)가 재선 공약으로 '파리 15분 도시(La ville de quart d’heure)'를 발표한 이후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이처럼 'N분 도시(동네)'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도시정책을 달리하며 근린 내 접근성에 기반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해외 각국의 대표 사례를 살펴보자.
프랑스 파리 15분 도시(La ville du quart d'heure)
'N분 도시(동네)'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는 파리시장 안 이달고가 발표한 공약으로, 그의 도시정책 자문인 파리 1대학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 교수가 처음 고안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다. 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요소는 '초근접성(hyper proximité)'이다. 즉, 파리를 보행과 자전거 중심의 친환경 녹색도시로서 15분 이내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에 접근 가능한 근거리 생활기반의 도시로 조성하는 것이다. 파리는 15분 도시 개념을 미니메스 지구(Minimes Barracks)에 적용했는데, 기존 건물을 공영주택단지와 보육원, 식당, 사무실 등의 복합용도로 재건축해 일상을 위한 기초시설을 배치하고 주차장은 공원으로 리모델링했다. 그뿐만 아니라 5분 거리에 있는 바스티유 광장과 리퍼블리크 광장 등을 교통 중심지에서 보행자 중심 공간으로 정비하고 코로나19 이후 교통 혼잡 완화, 사회적 거리두기, 탄소 중립 등을 위해 설치한 자전거 전용도로는 영구화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지난해 파리 의회는 15분 도시로의 재편을 촉진하기 위해 17개 자치구의 권한과 역할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하는 '15분 도시를 위한 파리 협정'을 체결하고, 도로 전환과 녹지 및 자연 확충, 지역 공공서비스 유지·개선 등 250개 사업을 선정해 3억4천만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라 밝혔다. 기존의 주거 중심의 논의에서 벗어나 15분 거리에서 일자리, 여가, 쇼핑, 교육, 문화, 산책과 휴식 등 다양한 기능을 복합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자립적 생활권으로의 개편은 어디에 거주하든 수준 높은 생활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하여 주민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탄소 중립과 도시 균형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된다.
호주 멜버른 20분 동네(Plan Melbourne)
호주의 빅토리아주 정부는 멜버른 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차량 의존도를 줄이고 보행자 중심의 공간으로 조성하는 '플랜 멜버른 2017-2050 종합 계획'을 발표하고 기후위기 대응, 삶의 질 제고를 위한 주요 전략으로 '20분 동네' 개념을 제시하였다. '20분 동네'는 고밀도와 보행 친화를 주요 원칙으로, 20분 이내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이나 서비스를 자동차 없이 접근 가능한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분 동네' 실현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이동수단은 보행으로, 지역주민이 도보로 쉽고 편리하게 필요한 시설과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또한, 지역 커뮤니티의 허브 역할을 하는 '활동센터(Activity Center)'를 설치하고 지방정부에서 계획 및 관리하는 지역 사회서비스와 기반시설을 활동센터 주변에 두어 서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하였다. 지역 특성에 따라 활동센터의 규모와 역할은 조금씩 다르며, 광역활동센터(Metropolitan Activity Center)와 주요활동센터(Major Activity Center), 마을활동센터(Neighbourhood Activity Center)로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 이들 활동센터의 네트워크는 지속 가능하고 평등하며 접근성 좋은 도시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양한 공간 활용이 가능한 높은 수준의 공공장소 및 오픈스페이스를 제공하여 다채로운 문화·예술 활동을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 마련, 보행자 중심의 거리환경을 조성 및 보행(통학) 안전 보장, 가로경관 개선 등도 20분 동네 실현을 위한 좋은 정책으로 꼽힌다. 특히 크로이던 사우스(Croydon South) 지역에서 진행한 지역사회와 파트너십을 맺는 통합형 근린 계획은 지역 상점의 회복을 도와 여러 서비스를 지속해서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멜버른 '20분 동네'는 지역거점시설을 통해 N분 도시를 실현하고자 한 사례다. 일상에 필요한 시설과 서비스를 활동센터라는 지역거점시설을 활용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지역주민의 삶의 가치를 높여주었다.
미국 포틀랜드 20분 동네(20-minute Neighborhood Portland)
포틀랜드 시는 무분별한 성장을 방지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과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계획을 미국 도시 중 최초로 도입하였다. 그동안 지역 경제를 성장시키며 자연을 보호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왔지만,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당면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판단하에 '포틀랜드 플랜(Portland Plan)'이라는 종합 계획을 세운 것이다. 포틀랜드 '20분 동네'는 이를 위한 세부 전략으로, 주민 80%가 안전하게 도보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소규모 상업지구를 조성하고 도시 일자리 창출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포틀랜드 20분 동네는 61m×61m 구획, 도보 20분 이내를 공간 단위로 설정하였다. 시설 범위는 식료품점, 편의점, 음료 및 주류 판매점, 식당가 등 다양한 상업시설과 주차장, 초등학교, 대중교통 환승장 등이다. 포틀랜드 '20분 동네'의 경우 접근성 분석을 통해 소상공인 중심의 지역별 소규모 상업지구를 만들고, 지역주민들에게 필수 생활서비스와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정책적으로도 많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다수의 스타트업이 지역 내 사업 확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잘 세워져 있으며 주민들 또한 지역을 위해 서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포틀랜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사용하지 않는 공터를 임시 공간으로 활용해 푸드카트나 오페라카트 등 지역의 수요를 고려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팝업 공간의 활성화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협동조합이 참여하여 사업할 수 있도록 공용공간을 갖추는 등 지역 내 일시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면서 효과적인 정책 실현에 주력한다.
'N분 도시(동네)'와 관련된 대표적인 해외 사례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지속 가능한 사업 추진과 관리 및 운영을 위해 민간의 참여를 적극 장려하고 정부 및 기관과의 다양한 파트너쉽을 통해 효과적으로 추진하고자 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N분 도시(동네)'가 성공적으로 조성되어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책 마련 과정에서 실수요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n분 도시 실현을 위한 도시전략 연구(성은영, 강현미, 허재석, 남궁지희)』 건축공간연구원, 2021
『파리의 15분 도시, 미래의 삶을 꿈꾸다(박창석)』 나라경제, 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