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서 산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2022.09.21메타버스, 2022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다.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현실을 초월한 세상, 새로운 가상 세상을 의미한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활에 스며들었고 짧은 시간 내에 가히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글로벌 정보기관들에 의하면 2023년에도 메타버스는 사회,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메가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상현실은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메타버스는 단지 게임이나 가상현실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과 같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가상현실보다 한층 더 진보된 개념이다. 가상 세계에 사람들이 모이고, 그렇게 모인 이들은 디지털 통화로 경제 활동을 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다. 메타버스는 상호작용과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인 셈이다. 그렇다면 가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서 모여 산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리버랜드 메타버스
리버랜드 자유 공화국은 2015년 체코의 정치인이 세운 마이크로네이션*이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의 무주지에 위치하며 면적은 약 7㎢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독자적 가상화폐를 만들어 운영하는 국가로, 범죄 전력만 없다면 전 세계 누구나 국민이 될 수 있다. 현재 60만 명이 시민권을 신청한 상태인데, 아직은 어디에서도 국가로 승인받지는 못한 상태다. 하지만, 정부 조직을 구성하고 조세정책과 통화정책, 투표권 기준을 수립하는 등 국가의 기본 토대가 될 시스템은 구축되었다.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니 다음은 도시다. 여기서 리버랜드 자유 공화국은 메타버스 개념을 도입한다. 전자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가상의 도시 ‘리버랜드 메타시티’를 만들고, 이후 물리적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것. 즉, ‘리버랜드 메타버스’에 대한 투자는 물리적 리버랜드에서의 지분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리버랜드 메타버스’의 설계는 영국 건축사무소 ZHA가 맡았다. 이들은 실존하는 이 땅을 가상 세계로 옮겨와 새로운 도시를 계획한다. 시청, 광장, NFT 거래소, 미술관 등의 다양한 도시 시설과 공동 주택을 기반으로 한 주거 공간을 갖추고 있는 엄연한 도시다. 사람들은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을 통해 가상 도시로 들어가서 아바타를 통해 도시를 활보하며 이 도시를 찾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한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가상화폐를 이용해 토지를 구입할 수 있으며 사업도 할 수 있다. 그야말로 현실의 축소판이다. 단, 유일하게 드는 의문은 과연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가상 세계에서 얼마나 진정성 있는 ‘소통’이 가능할 것이냐의 문제다.
가상과 현실, 어떤 세상에서든 인간은 사회적 존재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 페이스북은 VR을 이용해 ‘가상현실이 사회적 연결을 촉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VR 헤드셋을 통해 가상현실에서 대화하는 것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것이 인지적·감정적으로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참여자는 헤드셋을 끼고 아바타가 되어 기차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는데, 참여자의 90% 이상이 가상현실에서의 만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화를 가로막는 불필요한 편견을 제거할 수 있으며, 특히 내향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직접 만나는 것보다 가상현실에서 좀 더 쉽게 나를 표현하고 교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가상현실에서 사회적 연결이 가능한가에 대한 실험
‘연결’과 ‘일상의 연장’, 메타버스의 핵심 키워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상호 교류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는 메타버스 세계관의 핵심이다. 가상현실이 인간을 고립시킨다는 말도 옛말. 오히려 현실보다 훨씬 더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마주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더욱 세분화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소통을 끌어내기 위한,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유형의 공간 혹은 장소 또한 메타버스 안에서 등장할 수도 있다. 개인화와 개별화로 인한 고립과 단절이라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메타버스 적 세계관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어느덧 메타버스는 현실의 도피처로서의 가상이 아닌, 현실 세계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줄 기반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참고
https://www.facebook.com/business/news/insights/how-virtual-reality-facilitates-social-connection
사진 출처
https://liberland.org/en/about
https://www.youtube.com/watch?v=maNVg1_RPcE&t=154s&ab_channel=PatrikSchumacher
https://www.facebook.com/MetaForesight/videos/1053505271426698/